독립운동가 김규식 일생 업적

독립운동가 김규식 일생 업적

독립운동가 김규식 그는 경기도 양주군의 작은 동네에서 출생했습니다.
대한제국의 무관양성학교에 들어가 1902년에 대한제국의 육군의 참위가 됩니다.
대한제국의 육군에서 그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한편 군사적인 지식도 쌓게 됩니다.

 

독립운동가 김규식
독립운동가 김규식 그는 1882년 경기도 양주군에서 태어났습니다. 1902년 대한제국 육군 참위로 임관하였으나 1907년 일제의 강압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으로 활약했습니다. 1912년 만주로 망명하여 북로군정서를 조직하고 청산리 전투에 참전했습니다. 1922년 대한독립군단 총사령으로 취임하였고, 1923년 고려혁명군을 창립했습니다. 1931년 중국에서 암살당했습니다.

 

대한제국의 군인 그리고 의병활동

대한제국의 시위대부교, 육군연성학교에서는 조교로서 활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1907년 대한제국의 군대가 완전 해산되었습니다.
당시 대한제국의 군인이었던 독립운동가 김규식은 이후 의병활동을 하게 됩니다.
일제에 대항하는 의병 활동을 하면서 13도 창의군의 부대장으로서 일제에 대항하여 무력투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활동 지역은 철원과 양주에 근거지를 두고 일제에 맞서 싸우며 커다란 전과를 올리기도 합니다.
그 이후에 노령지역에서 군사무기의 구입을 시도하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감옥에 갑니다.
1910년에 일제에 의해 국권이 뺏기는 한일합병이 되자 결국 만주로 망명을 합니다.
망명 이후에도 그는 독립운동에 매진합니다.

 

망명 이후의 독립운동가 김규식

독립운동가 김규식은 1912년 중국의 만주지역으로 망명을 했습니다.
망명 후 1919년에 이르렀을 때 김좌진장군, 서일등과 함께 북로군정서라는 단체를 조직하면서 사단장이 되어 무장항일투쟁을 이어나갔습니다.
북로군정서에서는 사관연성소를 세워 이범석, 김좌진 장군과 함께 사관연성소교관이 되어 청년 교육에 앞장섰습니다.

 

청산리대첩 참전

독립운동가 김규식은 당시 제2연대장이었던 김좌진 장군의 부대에서 제1대대장의 임무를 갖고 청산리에서 전투에 참가하게 됩니다.
이 전투가 우리가 알고 있는 청산리 대첩입니다.
청산리 전투에서 일제에 맞서 대승을 하게 되고 조국민들에게 대한독립의 강한 영감을 주게 됩니다.

 

대한독립군단 활동

독립운동가 김규식은 대한독립단과 대한신민회와 같은 여러 독립군단체들을 경합 통합하여 서일을 총재로 한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한독립군단의 총사령관이 됩니다.
이후 3500여 명의 대한독립군들을 이끌고 러시아의 자유시로 건너가게 됩니다.

 

자유시참변과 독립군의 무장해제

당시 소련이 시베리아 연해주를 점령하고 있던 일본군을 철수시키기 위한 협상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소련 영토 내에 있던 대한독립군의 무장을 해제하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일본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었던 당시 소련이 대한독립군의 무장해제를 명령했습니다.
이에 당시 상하이 고려공산당의 의견을 따르던 독립군은 소련의 요구에 불응했습니다.
결국 소련이 공격을 하였고 이는 수많은 희생자를 만드는 교전이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독립군은 무장해제를 당하게 됩니다.

독립운동가 김규식 고려혁명군 조직과 미래인재양성

자유시사변 이후 독립운동가 김규식은 다시 옌지현지역으로 돌아가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노병회의 지원을 받습니다.
그 지원으로 다시 망명군 재편성합니다.
이범석장군과 고평등과 함께 고려혁명군을 조직하고 총사령관으로 취임합니다.
고려혁명군은 영농과 군사훈련을 강화시켜서 항일투쟁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1925년에는 북만주 닝안현 이역에서 김혁과 김좌진장군 등이 조직한 신민주에 참여를 하게 됩니다.
이듬해 4월에는 지린성지역에 결성 고려혁명당의 중앙위원이 되어 활동하게 됩니다.
이후 독립군의 미래 양성을 위해 중국의 옌지에 학교를 설립하고 젊은 청년들을 교육하여 장차 독립운동의 미래의 인재를 양성하였습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 김규식은 중국에서 암살을 당하게 됩니다.
과거에 함께 독립운동을 함께했지만 공산주의로 전향한 과거 동지들에 의해 피살을 당하게 되어 생을 마감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독립운동단체 내부에서의 사회적 이념 갈등과 분열로 인한 갈등이 최고조였던 것으로 여겨지는 사건 중에 하나였습니다.

 

고려혁명군

고려혁명군은 1923년 만주 연길현에서 김규식, 이범석, 고평 등에 의해 조직된 항일 독립운동단체입니다.
이들은 청산리대첩 등에서 전투 경험을 쌓게 되며, 새로운 전술과 전략, 진보적인 이념을 기반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이들은 북간도 지역을 거점으로 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며 혁혁한 성과를 거두고 있던 의군부를 재편성한 대규모의 항일 독립군부대입니다.
고려혁명군은 국민개병제와 병농일치제를 기반으로 우리 동포들에게 전반적인 교육은 물론 군사 교육까지 도맡아서 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는 병농일치제를 시행하여 겉으로는 선량한 농민으로 가장하여 주변에서 모르게 항일투쟁을 전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주요 활동지역은 북간도 지역이었으며, 독립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독립운동가 김규식 그의 사후

독립운동가 김규식의 독립운동은 무장항일투쟁 함께 교육을 통해 미래의 인재양성을 통한 독립운동의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독립운동에 큰 공로가 인정되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 되었습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 김규식은 자손 없이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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