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유관순 일생 업적

독립운동가 유관순 일생 업적

독립운동가 유관순. 그녀는 1902년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났습니다.
1919년 일제 강점기 시대인 당시 그녀는 이화 학당에 다니던 17세의 작은 소녀이자 학생이었습니다.
그런 작은 모습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일제에 맞서 3.1 운동에 앞장섰던 주요 독립운동가 중 한 사람입니다.

 

17세 소녀의 항일 3.1 만세운동

음력 1919년 3월 1일,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 아우내장터에서 유관순은 군중을 이끌며 만세 운동을 주도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날 유관순은 일제 경찰의 총, 칼에 의해 부모님을 잃고 현장에서 체포됩니다.

 

독립운동가 유관순
독립운동가 유관순. 그녀는 1902년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났습니다. 1919년 일제 강점기 시대인 당시 그녀는 이화 학당에 다니던 17세의 작은 소녀이자 학생이었습니다. 그런 작은 모습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일제에 맞서 3.1 운동에 앞장섰던 주요 독립운동가 중 한 사람입니다.

 

독립운동가 유관순. 함께한 독립운동가들

유관순과 함께한 독립운동가로는 천안 출신으로 이병완, 백광우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통령을 지낸 이동녕은 3·1 운동의 배후의 주동자 중 한 사람입니다.
여성 독립운동가로는 3.1 운동의 서울 시위를 주도한 이시영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3·1 운동에 참여한 무수히 많은 독립운동가가 유관순과 함께 항일 투쟁을 펼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유관순. 옥중생활 속의 독립운동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유관순은 일제 경찰의 취조실에 끌려가 혹독한 취조와 고문을 받게 됩니다.
잔인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3.1 운동이 1주년을 맞는 1920년 3월 1일에는 감옥 안에서도 만세 운동을 하였습니다.
어린 소녀의 만세 운동에 수감자들이 크게 호응하여 이들의 만세 소리가 건물 밖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대한 독립 만세’ 소리에 형무소 주변으로 큰 인파가 모여들었습니다.
이 만세 운동 사건으로 유관순은 여러 차례 심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결국 유관순은 1920년 9월 28일 18세의 나이로 사형 선고를 받고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독립운동가 유관순.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상징이 되다

어린 나이에 보여준 유관순의 애국심과 독립에 대한 의지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에 1993년 그녀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고향 충남 천안시에 유관순 열사 기념관을 세워 그녀의 업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일본의 또 다른 시각

독립운동가 유관순. 그녀는 합법적인 일본 통치에 대항한 무력 투쟁을 일삼는 ‘반국가적 테러리스트’라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일본 정부와 교과서에서는 유관순의 만세 운동을 ‘불법적 폭력’이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행태는 일본의 식민 지배와 위안부 문제 등 역사 인식에서도 비슷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도 일부 학자와 지식인 사이에서는 유관순의 투철한 애국심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제시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여성 독립운동가들

– 강경애
1892년 충청남도 서산에서 출생하였으며, 1979년에 작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1919년 3.1 운동 당시 경성에서 발생한 집회를 주도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1920년에는 조선 시대 최초의 여성들로만 조직된 단체 ‘봉오동 여성 독립단’을 만들고 지속적인 독립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나현숙
1896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하였으며, 1971년에 작고 하셨습니다.
그녀 또한 1919년 평양에서 발생한 3.1 운동 집회를 주도하였습니다.
집회 이후 그녀는 일본으로 건너가 망명하였으며, 그곳에서도 조선의 독립운동을 이끌었습니다.
1945년 광복 이후에 그녀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으로도 활약하였습니다.

-김원봉
1891년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하였으며, 1951년에 작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여성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자로서 ‘조선공산당’을 창당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현숙과 마찬가지로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의 독립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그녀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본인의 일생을 희생하였습니다.

-백남희
1900년 전라남도 나주에서 출생했으며, 1950년에 작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1919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발생했던 3.1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또래 학생들의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전파하였습니다.
그녀도 김원봉과 마찬가지로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의 독립 운동을 위해 힘썼습니다.
광복 이후에는 여성들의 인권 신장과 교육에 그녀의 인생을 바쳤으며, 특히 젊고 어린 여성들의 교육에 전념하였습니다.

이들 이외에도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습니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본인은 희생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헌신을 기억해야 하며,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3.1 운동에 대하여

3.1 운동은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우리나라의 대규모 독립운동을 말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발생한 이 운동은 우리 국민들이 자발적을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반대와 조국독립을 요구하며 일어난 평화적 시위였습니다.
대한민국 전역 뿐만 아니라 해외에 거주 중인 대한민국 국민들 사이에서도 발생하였으며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대외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비록 이 운동을 통해 독립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여러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 운동을 통해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어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또한, 운동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을 부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립운동을 무력적인 시위가 아닌 평화적인 저항으로 전화하는데 결정적 전환점이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는 3월 1일을 삼일절로서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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